allsnsrank
회원가입

잘 보이려는 순간, 창작은 끝난다.

이관휘 Kwanee
구독자 1.1만명
조회수 647회 · 좋아요 13 · 2026-10-13 📊 채널 정보 보기 ▶ 유튜브

지금 보고 있는 영상

잘 보이려는 순간, 창작은 끝난다.
조회수 647
영상 설명 · 눌러서 펼치기
아래로는 ai와 나눈 담론입니다.


왜 스스로를 꾸미는 존재는 창작가가 될 수 없고
자신을 고백하는 존재는 창작가가 되나?



핵심은 꾸밈은 이미 아는 자기를 내보이는 일이고,
고백은 아직 모르는 자기를 알아내는 일이라는 점입니다.
창작은 후자의 구조를 가집니다.

1. 꾸밈은 답이 먼저 정해져 있습니다
꾸민다는 건 "이렇게 보이고 싶다"는 기준에 나를 맞추는 일입니다. 그 기준은 대개 타인의 기대나 유행, 이미 통용되는 자기상에서 옵니다. 그러면 결과물은 이미 세상에 있는 이미지의 변주에 그칩니다. 창작은 세상에 없던 것을 내놓는 일인데, 꾸미는 존재는 출발점부터 있는 것을 복제하고 있습니다.

2. 고백은 결과를 모른 채 시작합니다
고백은 말하기 전에는 내가 무엇을 말하게 될지 정확히 모릅니다. 말하고 쓰고 찍는 과정에서 비로소 "내가 이런 사람이었구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 발견이 새로움의 원천입니다. 그래서 고백에는 필연적으로 형식의 탄생이 따릅니다. 기존의 틀로는 이 내용을 담을 수 없으니 새로운 틀이 필요해지기 때문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나 루소의 『고백록』이 장르를 만든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3. 고백에는 대가가 있습니다
꾸밈은 나를 보호하고, 고백은 나를 노출합니다. 잃을 수 있는 것을 걸었을 때 작품에는 무게가 생기고, 타인이 그 안에서 자기 자신을 알아보게 됩니다. 그 공명이 창작의 보편성을 만듭니다. 꾸밈은 감탄은 얻어도 공명은 얻기 어렵습니다.

https://smartstore.naver.com/xxxamo
유료레슨문의 링크입니다 감사합니다.

ⓒ2026 copyright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