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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벌초 전 꼭 보세요 벌초 초보 필수영상 예초기 점검부터 작업 후 관리까지 한 번에

조회수 18,409회 · 좋아요 274 · 참여율 1.49% · 2026-08-31 📊 채널 정보 보기 ▶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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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벌초 전 꼭 보세요 벌초 초보 필수영상 예초기 점검부터 작업 후 관리까지 한 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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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벌초 전 꼭 보세요. 벌초 초보 필수영상-예초기 점검부터 작업 후 관리까지 한 번에

역사는 기록으로 남고, 뿌리는 기억으로 이어집니다
시간은 사람을 떠나보내지만, 그 사람이 남긴 정신까지 지우지는 못합니다.

누군가는 나라의 바다를 지켰고, 누군가는 목숨을 걸고 그 바다를 건너, 자신이 보고 확인한 것을 역사로 남겼습니다.

그리고 수백 년의 세월이 흘러, 오늘 그 후손들이 다시 선조의 묘역을 찾아, 정성껏 벌초합니다.

1694년, 장한상 장군은 기록을 남겼고, 2026년 오늘, 우리는 그 기록을 기억합니다.

삼도수군통제사 장시규 장군,
그리고 그의 아들 독도장군 장한상 장군.

오늘의 벌초는 단순히 묘역을 가꾸는 일이 아닙니다.

선조에 대한 예를 갖추고,
그분들이 남긴 정신과 역사를
다음 세대에 이어주는 일입니다.

사람은 떠나도 기록은 남고,
세월은 흘러도 기억하는 후손이 있는 한
역사는 끝나지 않습니다.


독도장군 장한상과 삼도수군통제사 장시규.
오늘은 두 분의 묘역을 벌초하며 되새겨보는, 우리 선조들의 역사 이야기입니다.

1694년 음력 9월 19일.
장한상 장군은 약 150명의 인원을 이끌고 거친 동해를 건넜습니다.

울릉도에 도착한 뒤 섬 곳곳을 조사했고, 비와 안개가 걷힌 어느 날 중봉에 올라 바다를 바라봅니다.
그때 동남쪽 먼 바다에 또 하나의 섬이 보였습니다.
장한상 장군은 그 섬의 방향과 크기, 거리까지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오늘날 독도 역사를 이야기할 때 매우 중요한 사료가 된 울릉도사적입니다.
그런데 독도장군 장한상의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만나볼 분이 있습니다.
바로 그의 아버지이자 조선 수군의 최고 지휘관인 삼도수군통제사 장시규 장군입니다.

지금 제가 찾아온 곳은 장시규 장군의 묘역입니다.
장시규 장군은 1627년에 태어나 1648년 무과에 급제했습니다.

이후 선전관을 시작으로 무관의 길을 걸으며 경상도좌수사, 전라도우수사, 회령부사, 총융중군, 경기도수군절도사 등 조선의 중요한 무관직을 두루 거쳤고, 마침내 삼도수군통제사에 오릅니다.

삼도수군통제사는 경상도·전라도·충청도 삼도의 수군을 총괄하던 조선 수군의 최고 지휘관입니다.

오늘 제가 이 묘역을 벌초하면서 드는 생각은 조금 남다릅니다.
우리 순천장씨 문중의 선조께서 높은 벼슬을 지냈다는 사실도 뜻깊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분이 자신의 시대에 어떤 책임을 가지고 어떻게 살았느냐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조에 대한 예를 갖추고 그분이 남긴 삶과 정신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것.
저에게 오늘 벌초는 바로 그런 시간입니다.

그리고 장시규 장군의 이러한 무인의 기질과 나라에 대한 책임감은 그의 아들에게도 이어집니다.
그 아들이 바로 1694년 거친 동해를 건너 울릉도를 수토하고 독도에 관한 중요한 기록을 남긴 독도장군 장한상 장군입니다.

이곳이 바로 운암 장한상 장군의 묘역입니다.
장한상 장군은 1656년 당시 의성 비안현에서 태어났습니다.
본관은 순천이고 자는 필경, 호는 운암입니다.

아버지가 바로 조금 전 찾아뵈었던 삼도수군통제사 장시규 장군입니다.
장한상은 아버지의 무인 기질을 이어받아 1676년 무과에 급제했고, 선전관을 거쳐 여러 무관직을 지냈습니다.
1682년에는 통신사의 일원으로 일본에도 다녀옵니다.

여기서 잠깐, 장한상 장군의 출생에 얽힌 이야기가 있습니다
장한상 장군의 출생을 두고 이 지역과 문중에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공식 사료로 확인되는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는 오랫동안 지역에 전해 내려오는 출생 전승이라는 점을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장한상 장군은 어머니가 청석마을에서 잉태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기 전 사주를 보았더니, 그곳에서 태어나면 큰 인물이 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이를 낳을 때가 가까워지자 고개를 넘어 상제마을로 이동하여 출산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훗날 조선의 무장이 되어 울릉도를 수토하고 독도에 관한 중요한 기록을 남긴 장한상 장군이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여부를 오늘날 모두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전승 자체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한 인물이 세상을 떠난 뒤 300년이 넘도록 그가 태어난 이야기가 지역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는 것은, 그만큼 장한상이라는 인물이 이 지역 사람들에게 특별한 존재였다는 뜻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실제 역사 속 장한상은 그 전승 못지않게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갑니다.

1694년, 운명을 바꾼 울릉도 수토
장한상이라는 이름을 오늘날 우리가 특별히 기억하게 만든 결정적인 사건은 1694년, 숙종 20년​에 일어납니다.
당시는 안용복 사건 등을 비롯해 울릉도와 그 주변 바다를 둘러싸고 조선과 일본 사이에 긴장이 이어지던 시기였습니다.
조선 조정에서도 이제는 울릉도가 어떤 상태인지 국가가 직접 확인해야 한다고 판단합니다.
재상 남구만 등이 국가 차원의 조사를 건의했고, 당시 삼척영장이던 장한상에게 울릉도를 직접 수토하라는 임무가 내려집니다.
여기서 수토란 중앙정부의 명을 받은 관리가 울릉도에 직접 건너가 섬의 상황을 조사하고 순찰한 뒤 그 결과를 국가에 보고하는 것입니다.

1694년 음력 9월 19일.
장한상은 약 150명의 인원과 6척의 배를 이끌고 동해로 나아갑니다.
망망대해에서 풍랑 한번 잘못 만나면 살아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항해 도중 거센 풍랑을 만나 배들이 흩어지는 위기까지 겪습니다.
그럼에도 장한상 일행은 울릉도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약 13일 동안 울릉도 곳곳을 조사합니다.
산과 계곡, 해안의 지형은 물론이고 사람이 머문 흔적은 없는지, 특히 일본인이 드나든 흔적은 없는지까지 살펴봅니다.

그리고 장한상은 자신이 직접 보고 확인한 것을 기억 속에만 남겨두지 않았습니다.
기록했습니다.
그 기록이 바로 울릉도사적입니다.

그리고 어느 맑은 날, 바다에서 섬 하나를 봅니다
어느 날 비와 안개가 걷힙니다.
장한상 장군은 울릉도의 중봉에 올라 사방을 바라봅니다.
동쪽으로 고개를 돌려 바다를 바라보았습니다.
망망대해입니다.

그런데—
저 멀리 섬 하나가 보입니다.
장한상은 그 섬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방향을 살폈습니다.
크기를 가늠했습니다.
거리도 추정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그 섬은 진방, 즉 동남쪽에 있고, 크기는 ​울릉도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며, 거리는 300여 리에 불과하다​고 기록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독도와 관련해 중요하게 평가하는 바로 그 기록입니다.
여기서 저는 한 가지를 생각해봅니다.
장한상이 섬을 바라봤다는 사실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가 그것을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말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집니다.
그러나 기록은 남습니다.

1694년 장한상 장군이 남긴 기록이 33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한반도의 동쪽 끝에서 북쪽 끝까지
장한상 장군의 이야기는 울릉도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후에도 경상좌도와 함경북도 등 여러 지역의 병마절도사와 수군절도사를 지냈습니다.

1712년에는 함경북도 병마절도사로 있으면서 백두산 일대와 관련된 국가적 임무에도 참여합니다.

동쪽 바다 울릉도를 수토했던 무장이 훗날 북쪽 백두산 일대의 국경과 관련된 임무에도 참여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1724년 생을 마칩니다.

오늘 이곳에서 장한상 장군의 묘역을 정성껏 벌초하면서 저는 한 가지를 다시 생각합니다.
역사는 현장을 확인한 사람이 만들고, 그 역사를 오래 남기는 것은 기록입니다.

그런데 장시규와 장한상이라는 두 무장도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것은 아닙니다.
그분들에게도 뿌리가 있었습니다.
그 뿌리를 찾아 숭의재로 가보겠습니다.
이곳은 우리 순천장씨 의성 입향조 장사검 선조를 기리는 숭의재입니다.
문중 족보에 따르면 장사검 선조는 1321년에 태어나 1392년까지 사신 것으로 전합니다.

고려 말 문과에 급제한 뒤 사재시 소감 등을 거쳐 관직에 나아갔으나, 나라가 기울어가는 모습을 보며 통탄하고 관직에서 물러나 은거했다고 전합니다.

그리고 우리 순천장씨는 장사검 선조를 의성 입향조로 모시고 있습니다.

1321년.
조선이 건국되기도 전입니다.
한 선조가 의성에 뿌리를 내리고 한 세대, 또 한 세대가 이어집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삼도수군통제사 장시규 장군이 나오고,
그 아들로 울릉도를 수토하고 독도에 관한 기록을 남긴 장한상 장군이 나옵니다.
그리고 다시 300여 년이 흘렀습니다.

2026년 오늘,
후손이 다시 이곳을 찾아 선조의 묘역을 정성껏 벌초하고 제실을 가꾸고 있습니다.

오늘 저는 삼도수군통제사 장시규 장군,
독도장군 장한상 장군,
그리고 순천장씨 의성 입향조 장사검 선조를 찾아뵈었습니다.

오늘 한 일만 놓고 보면 묘역을 벌초하고 제실 주변을 정갈하게 가꾼 하루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것을 단순한 벌초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조상을 기억하는 일입니다.

1694년 장한상 장군은 기록을 남겼고,
2026년 오늘 후손은 그 역사를 기억합니다.

묘역을 정성껏 벌초한다는 것은 단순히 주변을 정리하는 일이 아닙니다.
선조에 대한 예를 갖추고, 우리의 뿌리와 이야기를 다음 세대에 전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떠나도 기록은 남고,
세월은 흘러도 기억하는 후손이 있는 한 역사는 이어집니다.

역사는 기록으로 남고,
뿌리는 기억으로 이어집니다.

지금까지 조경과구들장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