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개최 일본 나고야가 유력했던 88올림픽 당시 상황
지금 보고 있는 영상
올림픽개최 일본 나고야가 유력했던 88올림픽 당시 상황
조회수 1,196
영상 설명 · 눌러서 펼치기
1981년 9월 30일, 서독 바덴바덴 제84차 IOC 총회.
국제 여론은 나고야의 우세를 점쳤습니다.
북한과의 대치로 정치 상황은 불안했고, 공산진영 국가들의 반대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서울 종합경기장은 공정 60%. 관심사는 "서울이 과연 몇 표나 얻느냐"였습니다.
사마란치 IOC 위원장이 서툰 발음으로 부른 이름은 '쎄울'이었습니다.
서울 52표, 나고야 27표.
한국은 근대올림픽을 개최하는 14번째 나라, 아시아에서 두 번째,
그리고 개발도상국으로는 첫 개최국이 되었습니다.
7년 뒤인 1988년 9월 17일, 160개국 선수 8,391명이 서울에 모였습니다.
성화 봉송 주자만 1,467명이었습니다.
한국은 금 12 · 은 10 · 동 11, 종합 4위로 역대 최고 성적을 거뒀습니다.
이 경험은 훗날 한·일 월드컵과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의 초석이 됐습니다.
영상 출처 : KTV국민방송 대한뉴스 (공공누리 제1유형)
#88올림픽 #서울올림픽 #바덴바덴 #나고야 #쎄울 #대한민국역사 #근현대사 #shorts
국제 여론은 나고야의 우세를 점쳤습니다.
북한과의 대치로 정치 상황은 불안했고, 공산진영 국가들의 반대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서울 종합경기장은 공정 60%. 관심사는 "서울이 과연 몇 표나 얻느냐"였습니다.
사마란치 IOC 위원장이 서툰 발음으로 부른 이름은 '쎄울'이었습니다.
서울 52표, 나고야 27표.
한국은 근대올림픽을 개최하는 14번째 나라, 아시아에서 두 번째,
그리고 개발도상국으로는 첫 개최국이 되었습니다.
7년 뒤인 1988년 9월 17일, 160개국 선수 8,391명이 서울에 모였습니다.
성화 봉송 주자만 1,467명이었습니다.
한국은 금 12 · 은 10 · 동 11, 종합 4위로 역대 최고 성적을 거뒀습니다.
이 경험은 훗날 한·일 월드컵과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의 초석이 됐습니다.
영상 출처 : KTV국민방송 대한뉴스 (공공누리 제1유형)
#88올림픽 #서울올림픽 #바덴바덴 #나고야 #쎄울 #대한민국역사 #근현대사 #shor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