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같이가요 김사장! 영주가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된 사건은? #영주대홍수 #경북문화관광공사 #김성조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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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같이가요 김사장! 영주가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된 사건은?
▶1961년 7월 11일 새벽 4시부터 무려 4시간동안 영주군 일대에 215mm의 집중 폭우가 쏟아졌었다.
소백산 넓은 골짜기에서 쏟아져 내린 빗물은 삽시간에 풍기 남원천을 가득 메웠고, 이어 영주읍 시가지를 감돌아 흐르는 서천에 이르러 아침 8시경 불바위 북쪽 제방을 붕괴시키면서 온 시가지를 물바다로 만들고 말았다.
당시 서천은 지금의 서천교,영일초등학교, 불바위, 상공회의소, 휴천동천주교회, 꽃동산, 남부초등학교 방향으로 꼬불 꼬불 S자 모양으로 형성되어 한꺼번에 많은 양의 물을 흘러내리지 못하였던 것이다.
영주군 수해대책본부에서는 물에 잠긴 시가지를 원상회복 하기 위하여 오전 9시 30분경 당시 원당천(지금의 청년회의소) 앞 제방 둑 50여m를 잘라 물길을 터서 남산들(지금의 영주역) 방향으로 물이 빠지도록 하였다.
4시간 30분이 지난 오후 2시경이 지나자, 물에 잠겼던 영주 시가지는 원래의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수해 피해 집계결과 가옥유실 149동, 가옥전파 176동, 가옥 반파 416동, 가옥침수 1,971동, 이재민 15,319명, 전답침수 및 매몰 378정보, 도로유실 3개소 800여m, 도로 파손 2개소 203m, 제방파손 2,370m, 정부양곡 침수 4,144석, 가축유실 1,479마리 등이었으며, 인명피해로는 14명이 숨지고, 52명이 중경상을 입었었다.
이 수해로 인하여 영주에 다시는 수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가흥리 한절마 뒷산을 절개하여 물길을 돌리는 직강直江공사를 하게 되었는데, 본 공사에는 육군 제133공병 대대 및 해병 제1상륙사단 군인 700여명이 투입되어 수해 난지 262일만인 1962년 3월 30일 역사적인 통수식을 가졌다.
이 날 준공식에는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박정희 의장과 송요찬 내각수반, 버거 주한 미국대사, 멜로이 미8군사령관 등 많은 귀빈들이 참석하였다.
당시 국토건설단에서는 수해복구 공사비로를 23억환이 소요 된다고 추정하였으나, 5.16 군사혁명으로 집권한 군사정부에서 군인과 군 장비를 투입하였기 때문에 5억6천만환의 사업비로 공사를 마쳤다.
▶ 당시 공사비 5억 6천만원의 가치
- 금 1돈 5,000환
- 금 120,000돈
- 쌀 한 가마
- 5,000환
- 쌀 120,000가마
- 의사 인턴 월급 2,000환
서천 유로변경 공사로 인하여 영주는 수해의 위험에서 벗어 나게 되었으며, 중앙시장 자리에 있던 영주역을 지금의 자리 휴천동으로 옮겨 新영주와 舊영주로 분리되어 새로운 시가를 형성되게 하였다.
당시 물길이 흐르던 서천에는 시민회관과 강변1차아파트 등 주택이 들어서서 지난날의 아픈 사건을 찾아 볼 수 없게 되었으며, 수해복구공사 준공기념비석이 현재 구성공원에 세워져 있다.
[출처] 1961년 영주 대홍수|작성자 구름
▶ - 영주 서천뚝방길 기념식수 (삼판서고택 뒤)
- 전 박정희 대통령 의장시절, 1961년 7월 11일 영주에 내린 대홍수로 인해
수해복구공사를 지시 하여 서천유로를 바꾸는 공사가 끝난
1962년 3월 31일을 기념하여 식수한 기념 식수
- 삼판서고택 : 경상북도 영주시 선비로181번길 56-1
#영주 #서천 #삼판서고택 #영주대홍수 #경북문화관광공사 #김성조사장
▶1961년 7월 11일 새벽 4시부터 무려 4시간동안 영주군 일대에 215mm의 집중 폭우가 쏟아졌었다.
소백산 넓은 골짜기에서 쏟아져 내린 빗물은 삽시간에 풍기 남원천을 가득 메웠고, 이어 영주읍 시가지를 감돌아 흐르는 서천에 이르러 아침 8시경 불바위 북쪽 제방을 붕괴시키면서 온 시가지를 물바다로 만들고 말았다.
당시 서천은 지금의 서천교,영일초등학교, 불바위, 상공회의소, 휴천동천주교회, 꽃동산, 남부초등학교 방향으로 꼬불 꼬불 S자 모양으로 형성되어 한꺼번에 많은 양의 물을 흘러내리지 못하였던 것이다.
영주군 수해대책본부에서는 물에 잠긴 시가지를 원상회복 하기 위하여 오전 9시 30분경 당시 원당천(지금의 청년회의소) 앞 제방 둑 50여m를 잘라 물길을 터서 남산들(지금의 영주역) 방향으로 물이 빠지도록 하였다.
4시간 30분이 지난 오후 2시경이 지나자, 물에 잠겼던 영주 시가지는 원래의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수해 피해 집계결과 가옥유실 149동, 가옥전파 176동, 가옥 반파 416동, 가옥침수 1,971동, 이재민 15,319명, 전답침수 및 매몰 378정보, 도로유실 3개소 800여m, 도로 파손 2개소 203m, 제방파손 2,370m, 정부양곡 침수 4,144석, 가축유실 1,479마리 등이었으며, 인명피해로는 14명이 숨지고, 52명이 중경상을 입었었다.
이 수해로 인하여 영주에 다시는 수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가흥리 한절마 뒷산을 절개하여 물길을 돌리는 직강直江공사를 하게 되었는데, 본 공사에는 육군 제133공병 대대 및 해병 제1상륙사단 군인 700여명이 투입되어 수해 난지 262일만인 1962년 3월 30일 역사적인 통수식을 가졌다.
이 날 준공식에는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박정희 의장과 송요찬 내각수반, 버거 주한 미국대사, 멜로이 미8군사령관 등 많은 귀빈들이 참석하였다.
당시 국토건설단에서는 수해복구 공사비로를 23억환이 소요 된다고 추정하였으나, 5.16 군사혁명으로 집권한 군사정부에서 군인과 군 장비를 투입하였기 때문에 5억6천만환의 사업비로 공사를 마쳤다.
▶ 당시 공사비 5억 6천만원의 가치
- 금 1돈 5,000환
- 금 120,000돈
- 쌀 한 가마
- 5,000환
- 쌀 120,000가마
- 의사 인턴 월급 2,000환
서천 유로변경 공사로 인하여 영주는 수해의 위험에서 벗어 나게 되었으며, 중앙시장 자리에 있던 영주역을 지금의 자리 휴천동으로 옮겨 新영주와 舊영주로 분리되어 새로운 시가를 형성되게 하였다.
당시 물길이 흐르던 서천에는 시민회관과 강변1차아파트 등 주택이 들어서서 지난날의 아픈 사건을 찾아 볼 수 없게 되었으며, 수해복구공사 준공기념비석이 현재 구성공원에 세워져 있다.
[출처] 1961년 영주 대홍수|작성자 구름
▶ - 영주 서천뚝방길 기념식수 (삼판서고택 뒤)
- 전 박정희 대통령 의장시절, 1961년 7월 11일 영주에 내린 대홍수로 인해
수해복구공사를 지시 하여 서천유로를 바꾸는 공사가 끝난
1962년 3월 31일을 기념하여 식수한 기념 식수
- 삼판서고택 : 경상북도 영주시 선비로181번길 56-1
#영주 #서천 #삼판서고택 #영주대홍수 #경북문화관광공사 #김성조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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