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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대한민국 항공산업의 운명을 바꾼 한마디

YOONGOON (융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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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대한민국 항공산업의 운명을 바꾼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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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제 아버지, 이재기 준장이 젊은 시절 공군 대위로 복무하던 때의 사진입니다.

사진 속 젊은 조종사가 훗날 대한민국 고등훈련기 국산 개발의 시작점에 서게 될 것이라고는, 아마 아무도 알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공군사관학교 16기로 졸업한 전투기 조종사였고, 이후 걸프전에도 참전하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얼마 전 가족 모임에서 아버지로부터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1990년대 초, 우리 공군의 고등훈련기 교체가 필요한 시점이었지만 당시 세계 항공기 시장에는 우리 공군의 요구와 훈련 환경에 맞는 기종이 마땅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이것을 단순히 외국에서 항공기를 사오는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이 항공우주산업을 가질 수 있느냐, 없느냐를 결정하는 문제”

라고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고등훈련기의 국내 개발을 국방부에 건의했고, 이후 고등훈련기사업단이 만들어지면서 초대 사업단장을 맡게 되셨습니다.

미국, 영국, 스페인 등 해외 항공기 제작사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기술이전과 공동개발, 해외 수출 가능성 등을 협의했고,

“국내에서만 판매해서는 개발비를 감당할 수 없다. 처음부터 해외 수출을 전제로 개발해야 한다.”

는 주장을 계속하셨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미국 업체와의 협의를 바탕으로 종합 보고서를 작성해 정부에 제출했고, 1994년에는 청와대에서 경제수석 주관으로 관계 부처가 참석한 가운데 사업 예산을 논의하는 자리까지 이어졌다고 합니다.

당시 경제수석은 구본영 경제 수석이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개발비가 너무 크고 국내 항공기 개발 경험도 부족하다는 이유로 사업의 성공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되어 예산 편성이 어렵다는 결론이 내려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회의가 끝날 무렵, 정책 결정권도 없었던 사업단장에게 마지막으로 발언할 기회가 주어졌고,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대한민국이 고등훈련기를 직접 개발해야 하는 이유를 강하게 호소하셨다고 합니다.

“지금 하지 않으면 영원히 할 수 없다.”

그리고 약 한 달 뒤, 다시 연락이 왔고 사업은 전면 재검토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대한민국의 고등훈련기 개발은 KTX-2 사업으로 이어졌고, 결국 우리가 알고 있는 T-50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은 T-50을 넘어 KF-21까지 개발하는 항공우주산업 국가가 되었습니다.

물론 이 이야기가 실제 역사적 과정에서 정확히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는 당시 자료와 기록을 하나씩 확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조만간 아버지를 직접 모시고,

그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누구를 만나 무엇을 협의했는지,
왜 국내 개발을 주장했는지,
그리고 1994년 청와대에서는 실제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그 이야기를 하나씩 직접 들어보려고 합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이유도 바로 그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대한민국 항공우주산업이 어디에서, 누구의 어떤 결단에서 시작되었는지.

이 오래된 흑백사진 한 장에서부터 그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이재기 준장
공군사관학교 16기
대한민국 공군 전투기 조종사
걸프전 참전
前 고등훈련기사업단 초대 사업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