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 인도_아잔타와 엘로라 석굴 (Ajanta Caves & Ellora Caves) 바위산을 통째로 조각한 기적, 아잔타. 엘로라 석굴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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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 인도_아잔타와 엘로라 석굴 (Ajanta Caves & Ellora Caves) 바위산을 통째로 조각한 기적, 아잔타. 엘로라 석굴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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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산을 통째로 조각한 기적, 아잔타. 엘로라 석굴사원
문명이 피고 지는 동안, 인간은 끊임없이 영원을 갈구해 왔습니다.
찰나를 살다가는 허무를 이겨내기 위해 돌을 쪼았고,
암흑 속에서도 붓을 놓지 않았습니다.
인도 마하라슈트라주의 거친 암반 지대.
그 한가운데 자리한 아잔타(Ajanta)와 엘로라(Ellora)는
인간의 그 집요한 열망이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는가를 증명하는
인류 위대한 유산의 정점입니다.
깊은 은둔의 동굴에서 폭발하는 신들의 산으로 이어지는 이 영적 오디세이는, 단순히 고대 유적을 둘러보는 관광을 넘어 돌 위에 새겨진 인류의 영성과 마주하는 경이로운 여정입니다.
아잔타 석굴사원은
곡류하는 와고라강 절벽, 말발굽 모양으로 굽어진 붉은 암벽에 29개의 석굴이 둥지를 틀고 있습니다.
서기전 2세기부터 5세기에 이르기까지, 세속의 소음을 피해 들어온 스님들은 오직 망치와 정 하나에 의지해 이 거대한 현무암 암반을 파내려 갔지요.
그리고 캄캄한 동굴 속에서 그려낸 벽화들은 1,5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생생한 숨결을 내뿜습니다.
1호 석굴 깊은 곳, 은은한 조명 아래 모습을 드러내는
'연화수보살(Padmapani)'을 마주하는 순간, 숨이 턱 막힙니다.
손에 연꽃을 든 채 살포시 고개를 숙인 보살의 미소는 세속의 모든 번뇌를 털어내어 주는 듯 그윽합니다.
연화수보살의 자비로운 미소와 미학은
훗날 한국의 금동반가사유상이나 일본의 류코지 보살상 등
동아시아 불교 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기원전 6세기, 석가모니는 계급의 차별과 엄격한 제사 의식에 반기를 들고
'모든 생명은 평등하다'는 가르침을 펼쳤습니다.
그것이 불교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러나 서기 4세기에서 5세기.
아잔타 석굴이 피어난 시기에 인도 민중 사이에서 힌두교가 본격적으로
세력을 얻기 시작합니다.
불교가 쇠퇴하며 엘로라에 힌두사원이 지어졌습니다.
불교가 '고요한 내면의 해탈'을 지향했다면, 힌두교는 삶의 폭발적인
에너지와 신들의 역동적인 세계를 찬미했습니다.
아잔타에서 차로 두 시간 남짓, 풍경은 고요한 은둔에서 역동적인 신화의 세계로 순식간에 전환됩니다.
34개의 석굴이 늘어선 엘로라(Ellora)는 불교와 힌두교 그리고
자이나교사원이 하나의 절벽 위에 나란히 공존하는 독특한 성지입니다.
엘로라의 진정한 기적은 단연 제16호 석굴, 카일라샤(Kailasa) 신전입니다.
이것은 건축이 아니라 거대한 '통돌 조각'입니다.
8세기 라슈트라쿠타 왕조의 석공들은 밖에서 돌을 쌓아 올린 것이 아니라, 거대한 현무암 바위산 꼭대기에서부터 아래로 깎아 내려가며 신전을 파냈습니다.
무려 20만 톤의 돌을 덜어낸 끝에 마침내 시바 신이 거주하는 거룩한 카일라사 산이 지상 위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아잔타의 고요한 미소에서 시작해 엘로라 카일라샤 신전의 거대한 위용으로 이어지는 여정.
왕조는 몰락하고 붉은 안료는 세월의 이끼 속에 바래갔지만, 거친 바위를 파내어 신을 부르고 진리를 구했던 석공들의 정 소리는 여전히 이 거대한 석굴 속에 아득히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문명이 피고 지는 동안, 인간은 끊임없이 영원을 갈구해 왔습니다.
찰나를 살다가는 허무를 이겨내기 위해 돌을 쪼았고,
암흑 속에서도 붓을 놓지 않았습니다.
인도 마하라슈트라주의 거친 암반 지대.
그 한가운데 자리한 아잔타(Ajanta)와 엘로라(Ellora)는
인간의 그 집요한 열망이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는가를 증명하는
인류 위대한 유산의 정점입니다.
깊은 은둔의 동굴에서 폭발하는 신들의 산으로 이어지는 이 영적 오디세이는, 단순히 고대 유적을 둘러보는 관광을 넘어 돌 위에 새겨진 인류의 영성과 마주하는 경이로운 여정입니다.
아잔타 석굴사원은
곡류하는 와고라강 절벽, 말발굽 모양으로 굽어진 붉은 암벽에 29개의 석굴이 둥지를 틀고 있습니다.
서기전 2세기부터 5세기에 이르기까지, 세속의 소음을 피해 들어온 스님들은 오직 망치와 정 하나에 의지해 이 거대한 현무암 암반을 파내려 갔지요.
그리고 캄캄한 동굴 속에서 그려낸 벽화들은 1,5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생생한 숨결을 내뿜습니다.
1호 석굴 깊은 곳, 은은한 조명 아래 모습을 드러내는
'연화수보살(Padmapani)'을 마주하는 순간, 숨이 턱 막힙니다.
손에 연꽃을 든 채 살포시 고개를 숙인 보살의 미소는 세속의 모든 번뇌를 털어내어 주는 듯 그윽합니다.
연화수보살의 자비로운 미소와 미학은
훗날 한국의 금동반가사유상이나 일본의 류코지 보살상 등
동아시아 불교 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기원전 6세기, 석가모니는 계급의 차별과 엄격한 제사 의식에 반기를 들고
'모든 생명은 평등하다'는 가르침을 펼쳤습니다.
그것이 불교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러나 서기 4세기에서 5세기.
아잔타 석굴이 피어난 시기에 인도 민중 사이에서 힌두교가 본격적으로
세력을 얻기 시작합니다.
불교가 쇠퇴하며 엘로라에 힌두사원이 지어졌습니다.
불교가 '고요한 내면의 해탈'을 지향했다면, 힌두교는 삶의 폭발적인
에너지와 신들의 역동적인 세계를 찬미했습니다.
아잔타에서 차로 두 시간 남짓, 풍경은 고요한 은둔에서 역동적인 신화의 세계로 순식간에 전환됩니다.
34개의 석굴이 늘어선 엘로라(Ellora)는 불교와 힌두교 그리고
자이나교사원이 하나의 절벽 위에 나란히 공존하는 독특한 성지입니다.
엘로라의 진정한 기적은 단연 제16호 석굴, 카일라샤(Kailasa) 신전입니다.
이것은 건축이 아니라 거대한 '통돌 조각'입니다.
8세기 라슈트라쿠타 왕조의 석공들은 밖에서 돌을 쌓아 올린 것이 아니라, 거대한 현무암 바위산 꼭대기에서부터 아래로 깎아 내려가며 신전을 파냈습니다.
무려 20만 톤의 돌을 덜어낸 끝에 마침내 시바 신이 거주하는 거룩한 카일라사 산이 지상 위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아잔타의 고요한 미소에서 시작해 엘로라 카일라샤 신전의 거대한 위용으로 이어지는 여정.
왕조는 몰락하고 붉은 안료는 세월의 이끼 속에 바래갔지만, 거친 바위를 파내어 신을 부르고 진리를 구했던 석공들의 정 소리는 여전히 이 거대한 석굴 속에 아득히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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