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년 동안 성씨 없이 살던 옛사람들은 어떻게 단 100년 만에 모두 김·이·박 성을 갖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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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년 동안 성씨 없이 살던 옛사람들은 어떻게 단 100년 만에 모두 김·이·박 성을 갖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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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교실이나 회사 회의실에서 김씨, 이씨, 박씨 한 번 손들어 보라고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아마 방 안에 있는 사람 절반 가까이가 손을 들 겁니다.
실제로 통계청 집계를 보면 우리나라 사람 열 명 중 네 명 반이 김씨, 이씨, 박씨이고, 여기에 최씨와 정씨까지 더하면 정확히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이 넘어갑니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가장 먼저 신기해하는 풍경이기도 하죠.
그런데 시간을 불과 백수십 년 전으로만 되돌려 보면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집니다.
당시 이 땅에는 성씨 자체가 아예 없이, 평생을 그저 막동이, 춘금이, 개똥이처럼 이름만으로 불리다가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수두룩했습니다.
그러다 역사의 격변기를 거치며 이름뿐이던 사람들까지 빠짐없이 성씨를 갖게 됐는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수백만 명이 새로 성씨를 얻었으면 성씨 종류가 수만 개로 늘어나야 자연스러울 텐데, 정작 사람들은 새로운 성을 만드는 대신 약속이나 한 듯이 김·이·박이라는 세 글자 속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물으면 흔히 두 가지 이야기부터 떠올립니다.
옛날 왕족이나 양반들이 첩을 여럿 두고 자식을 유독 많이 낳아서 그렇다거나, 반대로 조선 시대에는 양반 열 퍼센트만 성씨가 있다가 일제강점기에 천민들이 하루아침에 양반 성을 베껴 써서 그렇게 됐다는 이야기죠.
하지만 수백 년 치 조선의 호적 장부와 족보 기록을 직접 대조해 보면, 이 두 가지 상식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훨씬 치열한 생존의 기록이 드러납니다.
"남산에서 돌을 던지면 김씨 아니면 이씨가 맞는다." 이 오래된 농담이 어쩌다 진짜가 됐는지, 그 첫 번째 단서는 경상도 산청의 한 작은 고을에 남은 낡은 장부 속에 숨어 있습니다.
#성씨 #김이박 #한국사 #한국성씨 #김해김씨 #본관 #족보 #조선시대 #신분제 #노비 #단성호적 #역사 #조선후기 #일본성씨 #동성동본
[참고 자료 및 출처]
통계청,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 성씨 및 본관 집계
단성현 호적대장 (1606~1888년, 경상남도 산청 단성 지역 호적 기록)
권내현, 고려대학교 역사학 연구 (단성 호적 내 사노비 '수봉' 가계의 성관 획득 및 직역 변화 추적)
대구 지역 호적 분석 연구 (1690~1858년 양반 직역 비율 변화)
조선왕조실록 (1801년 순조 공노비 해방, 1886년 고종 노비 세습 폐지, 1894년 갑오개혁 신분제 폐지)
민적법 (1909년 3월 제정)
헌법재판소 1997년 동성동본 금혼 조항(구 민법 제809조) 헌법불합치 결정 및 2005년 민법 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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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콘텐츠는 직접 집필한 대본을 바탕으로 편집 및 제작된 독창적 영상으로 제작자 고유의 해설 및 표현, 영상 컨텐츠를 포함한 모든 데이터는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받고 있습니다. 무단 복제·재업로드·2차 가공을 엄격히 금지합니다. (영상의 자료로 사용된 시각자료에는 직접 촬영한 영상, 정식 사용권을 보유한 Stock 이미지·영상, 생성형 AI 이미지·영상 자료 등이 포함되어있을 수 있습니다.)
아마 방 안에 있는 사람 절반 가까이가 손을 들 겁니다.
실제로 통계청 집계를 보면 우리나라 사람 열 명 중 네 명 반이 김씨, 이씨, 박씨이고, 여기에 최씨와 정씨까지 더하면 정확히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이 넘어갑니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가장 먼저 신기해하는 풍경이기도 하죠.
그런데 시간을 불과 백수십 년 전으로만 되돌려 보면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집니다.
당시 이 땅에는 성씨 자체가 아예 없이, 평생을 그저 막동이, 춘금이, 개똥이처럼 이름만으로 불리다가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수두룩했습니다.
그러다 역사의 격변기를 거치며 이름뿐이던 사람들까지 빠짐없이 성씨를 갖게 됐는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수백만 명이 새로 성씨를 얻었으면 성씨 종류가 수만 개로 늘어나야 자연스러울 텐데, 정작 사람들은 새로운 성을 만드는 대신 약속이나 한 듯이 김·이·박이라는 세 글자 속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물으면 흔히 두 가지 이야기부터 떠올립니다.
옛날 왕족이나 양반들이 첩을 여럿 두고 자식을 유독 많이 낳아서 그렇다거나, 반대로 조선 시대에는 양반 열 퍼센트만 성씨가 있다가 일제강점기에 천민들이 하루아침에 양반 성을 베껴 써서 그렇게 됐다는 이야기죠.
하지만 수백 년 치 조선의 호적 장부와 족보 기록을 직접 대조해 보면, 이 두 가지 상식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훨씬 치열한 생존의 기록이 드러납니다.
"남산에서 돌을 던지면 김씨 아니면 이씨가 맞는다." 이 오래된 농담이 어쩌다 진짜가 됐는지, 그 첫 번째 단서는 경상도 산청의 한 작은 고을에 남은 낡은 장부 속에 숨어 있습니다.
#성씨 #김이박 #한국사 #한국성씨 #김해김씨 #본관 #족보 #조선시대 #신분제 #노비 #단성호적 #역사 #조선후기 #일본성씨 #동성동본
[참고 자료 및 출처]
통계청,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 성씨 및 본관 집계
단성현 호적대장 (1606~1888년, 경상남도 산청 단성 지역 호적 기록)
권내현, 고려대학교 역사학 연구 (단성 호적 내 사노비 '수봉' 가계의 성관 획득 및 직역 변화 추적)
대구 지역 호적 분석 연구 (1690~1858년 양반 직역 비율 변화)
조선왕조실록 (1801년 순조 공노비 해방, 1886년 고종 노비 세습 폐지, 1894년 갑오개혁 신분제 폐지)
민적법 (1909년 3월 제정)
헌법재판소 1997년 동성동본 금혼 조항(구 민법 제809조) 헌법불합치 결정 및 2005년 민법 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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