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미 - 삼백리 한려수도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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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미 - 삼백리 한려수도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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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이야기
우리나라 전국 13곳에 노래비가 세워져 있을 만큼 전 국민의 사랑을 받으며 아름다운 가사를 쓴 작사가가 바로 ‘정두수’ 선생님인데요. 이미자, 패티킴, 남진, 나훈아 선배님 등등 시대를 대표하는 명가수들과 함께 작업하면서 무려 3,500곡이 넘는 노래를 작사한 ‘정두수’선생님은 동래고등학교 시절부터 진주 개천예술제에 참가해서 시 부문에 입상하며, 문학도를 꿈꾸는 소년이었습니다. 서라벌 예대를 졸업하고 1961년 국민재건운동본부가 주최한 시 현상 공모에서 '공장'이라는 제목으로 당선되면서 형님 ‘정공채’시인과 함께 형제 시인이 될 거라 기대했던 ‘정두수’선생님이었지만, 주위의 예상과 달리 ‘정두수’선생님은 ‘시’를 노래에 옮겨서 ‘가사’를 쓰게 되었고요. 훗날, 정두수 선생님은 노래의 가사들을 가리켜서 ‘노래시’라고 표현하기도 했죠.
1963년 가요 '덕수궁 돌담길'로 대중가요 작사가로 데뷔한 이후!! 이미자 선배님의 '흑산도 아가씨', 남진 선배님의 '가슴 아프게', 나훈아 선배님의 '물레방아 도는데', 문주란 선배님의 '공항의 이별', 정훈희 선배님의 '그 사람 바보야', 은방울 자매 선배님들의 '마포종점' 등등 정두수 선생님의 아름다운 가사들은 수많은 명곡이 되어 사람들의 가슴에 구절구절 비단실처럼 아로새겨졌는데요. 50년 동안 심금을 울리는 가사를 썼던 정두수 선생님을 가리켜서 사람들은
‘노래시인’이라고 불렀습니다.
특히, 정두수 선생님은 박춘석 선생님과 콤비를 이뤄서 수많은 히트곡을 만들면서 지난 반세기 동안 대중가요의 중심에서 활약했는데요. 고향인 하동군 고전면을 비롯해서 전국에 가장 많은 노래비가 세워진 작사가라는 것은 그만큼 정두수 선생님의 노랫말 하나하나가 어려웠던 시절 국민들의 마음을 위로했다는 증거겠지요.
정두수 선생님의 명곡들 중에서 직접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씌어진 아름다운 가사로 많은 사랑을 받은 노래가 바로 ‘삼백리 한려수도’인데요. 정두수 선생님은 이 노래 가사를 쓰게 된 일화를 이렇게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나는 방학 때면 한려수도 뱃길을 따라 고향 하동으로 내려가곤 했다. 어느 봄날. 나는 방학을 맞이하여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여기서 나는 눈이 부실 만큼 아름다운 여인을 보게 된다. 여인은 김밥을 사려고 선실에서 나온 것이었다. 교복을 입은 것으로 보아 여고생이었다. ‘어찌 이토록 아름다운 사람이 있겠는가?’ 맑고 큰 눈에 오뚝한 코, 수려한 용모는 우아하고 빛났다. 그녀를 보는 순간, 나는 황홀감에 사로잡혔다. 그러다 조바심이 들었다. ‘그녀가 어디서 내리겠는가...’ 하는 조바심 말이다. 고향 금오산이 저 만치 보이고, 나는 배에서 내릴 준비를 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행복한 그녀와 헤어지기는 싫었다. ‘하동 노량에 함께 갔으면....’ 나는 눈을 감았다. 간절한 기도로 내 소망을 빌었다. 그러나 그녀는 선실에서 나오지를 않았다. 여수로 가는 것이었다. 멀어져 가는 배를 바라보는 내 가슴은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동백꽃 피는 통영항에서 처음 보았던 그녀는 동백꽃 피는 남쪽 항구로 사라지고 있었다. 나는 저녁노을이 왜 바다에 가라앉지 못하고 붉게 타는지를 알 것같았다.”
그렇게 서운할 수 없었던 그날의 무심한 연락선과 이별의 여수 바다에 붉게 타오르던 저녁노을을 떠올리면서 고등학교 시절에 써놓았던 시는, 1972년에 이미자 선배님의 목소리와 박춘석 선생님의 멜로디로 완성되었는데요. 바로 제목도 아름다운 ‘삼백리 한려수도’입니다.
“노을진 한산섬에 갈매기 날으니
삼백리 한려수도 그림같구나
굽이굽이 파도길에 배가 오는데
님 마중 섬색시의 풋가슴 속은
빨갛게 빨갛게
동백꽃처럼 타오르네
바닷가에 타오른다네
달 밝은 한산섬에 기러기 날으니
삼백리 한려수도 거울같구나
굽이굽이 바다길에 밤은 깊은데
섬색시 풋가슴에 피는 사랑은
빨갛게 빨갛게
동백꽃처럼 피어나네
바위 틈에 피어난다네”
‘한려수도’는 전라남도 여수시 오동도에서 경상남도 거제시 지심도에 이르는 구역으로 1968년 우리나라에서 해상공원으로는 최초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요. 300리 뱃길을 따라 크고 작은 섬들과 천혜의 자연경관이 조화를 이루는, 그야말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닷길이죠. 그 아름다운 바닷길에서 마주치면서 이름 모를 소녀에게 마음을 빼앗겼던 고등학생의 순수한 마음
이 노래 가사가 되었고, 이 노래는 우리나라 남해안의 아름다운 풍경과 서정적인 감성을 담아낸 명곡이 되었는데요.
크고 작은 섬이 에메랄드빛 바다 위에 점점이 떠있고, 잔잔한 물결은 마치 호수처럼 고요하고, 통영에 피어나는 동백꽃은 유난히 붉게 빛나고, 은빛 멸치떼가 몰려다니는 것이 보일 만큼 바닷물이 맑은 한려수도의 아름다운 풍광처럼 우리들의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지난날의 그리움을 고운 노래 속에서 만나보시면 좋겠습니다.
우리나라 전국 13곳에 노래비가 세워져 있을 만큼 전 국민의 사랑을 받으며 아름다운 가사를 쓴 작사가가 바로 ‘정두수’ 선생님인데요. 이미자, 패티킴, 남진, 나훈아 선배님 등등 시대를 대표하는 명가수들과 함께 작업하면서 무려 3,500곡이 넘는 노래를 작사한 ‘정두수’선생님은 동래고등학교 시절부터 진주 개천예술제에 참가해서 시 부문에 입상하며, 문학도를 꿈꾸는 소년이었습니다. 서라벌 예대를 졸업하고 1961년 국민재건운동본부가 주최한 시 현상 공모에서 '공장'이라는 제목으로 당선되면서 형님 ‘정공채’시인과 함께 형제 시인이 될 거라 기대했던 ‘정두수’선생님이었지만, 주위의 예상과 달리 ‘정두수’선생님은 ‘시’를 노래에 옮겨서 ‘가사’를 쓰게 되었고요. 훗날, 정두수 선생님은 노래의 가사들을 가리켜서 ‘노래시’라고 표현하기도 했죠.
1963년 가요 '덕수궁 돌담길'로 대중가요 작사가로 데뷔한 이후!! 이미자 선배님의 '흑산도 아가씨', 남진 선배님의 '가슴 아프게', 나훈아 선배님의 '물레방아 도는데', 문주란 선배님의 '공항의 이별', 정훈희 선배님의 '그 사람 바보야', 은방울 자매 선배님들의 '마포종점' 등등 정두수 선생님의 아름다운 가사들은 수많은 명곡이 되어 사람들의 가슴에 구절구절 비단실처럼 아로새겨졌는데요. 50년 동안 심금을 울리는 가사를 썼던 정두수 선생님을 가리켜서 사람들은
‘노래시인’이라고 불렀습니다.
특히, 정두수 선생님은 박춘석 선생님과 콤비를 이뤄서 수많은 히트곡을 만들면서 지난 반세기 동안 대중가요의 중심에서 활약했는데요. 고향인 하동군 고전면을 비롯해서 전국에 가장 많은 노래비가 세워진 작사가라는 것은 그만큼 정두수 선생님의 노랫말 하나하나가 어려웠던 시절 국민들의 마음을 위로했다는 증거겠지요.
정두수 선생님의 명곡들 중에서 직접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씌어진 아름다운 가사로 많은 사랑을 받은 노래가 바로 ‘삼백리 한려수도’인데요. 정두수 선생님은 이 노래 가사를 쓰게 된 일화를 이렇게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나는 방학 때면 한려수도 뱃길을 따라 고향 하동으로 내려가곤 했다. 어느 봄날. 나는 방학을 맞이하여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여기서 나는 눈이 부실 만큼 아름다운 여인을 보게 된다. 여인은 김밥을 사려고 선실에서 나온 것이었다. 교복을 입은 것으로 보아 여고생이었다. ‘어찌 이토록 아름다운 사람이 있겠는가?’ 맑고 큰 눈에 오뚝한 코, 수려한 용모는 우아하고 빛났다. 그녀를 보는 순간, 나는 황홀감에 사로잡혔다. 그러다 조바심이 들었다. ‘그녀가 어디서 내리겠는가...’ 하는 조바심 말이다. 고향 금오산이 저 만치 보이고, 나는 배에서 내릴 준비를 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행복한 그녀와 헤어지기는 싫었다. ‘하동 노량에 함께 갔으면....’ 나는 눈을 감았다. 간절한 기도로 내 소망을 빌었다. 그러나 그녀는 선실에서 나오지를 않았다. 여수로 가는 것이었다. 멀어져 가는 배를 바라보는 내 가슴은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동백꽃 피는 통영항에서 처음 보았던 그녀는 동백꽃 피는 남쪽 항구로 사라지고 있었다. 나는 저녁노을이 왜 바다에 가라앉지 못하고 붉게 타는지를 알 것같았다.”
그렇게 서운할 수 없었던 그날의 무심한 연락선과 이별의 여수 바다에 붉게 타오르던 저녁노을을 떠올리면서 고등학교 시절에 써놓았던 시는, 1972년에 이미자 선배님의 목소리와 박춘석 선생님의 멜로디로 완성되었는데요. 바로 제목도 아름다운 ‘삼백리 한려수도’입니다.
“노을진 한산섬에 갈매기 날으니
삼백리 한려수도 그림같구나
굽이굽이 파도길에 배가 오는데
님 마중 섬색시의 풋가슴 속은
빨갛게 빨갛게
동백꽃처럼 타오르네
바닷가에 타오른다네
달 밝은 한산섬에 기러기 날으니
삼백리 한려수도 거울같구나
굽이굽이 바다길에 밤은 깊은데
섬색시 풋가슴에 피는 사랑은
빨갛게 빨갛게
동백꽃처럼 피어나네
바위 틈에 피어난다네”
‘한려수도’는 전라남도 여수시 오동도에서 경상남도 거제시 지심도에 이르는 구역으로 1968년 우리나라에서 해상공원으로는 최초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요. 300리 뱃길을 따라 크고 작은 섬들과 천혜의 자연경관이 조화를 이루는, 그야말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닷길이죠. 그 아름다운 바닷길에서 마주치면서 이름 모를 소녀에게 마음을 빼앗겼던 고등학생의 순수한 마음
이 노래 가사가 되었고, 이 노래는 우리나라 남해안의 아름다운 풍경과 서정적인 감성을 담아낸 명곡이 되었는데요.
크고 작은 섬이 에메랄드빛 바다 위에 점점이 떠있고, 잔잔한 물결은 마치 호수처럼 고요하고, 통영에 피어나는 동백꽃은 유난히 붉게 빛나고, 은빛 멸치떼가 몰려다니는 것이 보일 만큼 바닷물이 맑은 한려수도의 아름다운 풍광처럼 우리들의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지난날의 그리움을 고운 노래 속에서 만나보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