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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크리스토퍼 놀란, 당신은 21세기 호메로스인가요?"

조회수 259회 · 좋아요 10 · 2026-08-05 📊 채널 정보 보기 ▶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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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크리스토퍼 놀란, 당신은 21세기 호메로스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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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https://www.bilibili.com/video/BV1vdGK6GEQE

Homeric heroism meets Bronze Age collapse, xenia, hubris and atonement "If greatness does not apologize, audiences will reject it…tradition must be understood before it can be reinvented" Nolan: "'The Odyssey' is a story of civilizational collapse…carrying forward the sensibility of 'Oppenheimer'"

호메로스 영웅담에 청동기 문명 붕괴·제니아·오만·속죄 결합
"위대함에 사과하지 않으면 관객이 거부…전통 알아야 혁신 가능"
놀란 "'오디세이'는 문명 붕괴의 이야기…'오펜하이머' 감각 이어졌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영화 '오디세이'를 영웅 오디세우스의 귀환을 재현한 모험담이 아니라 문명의 붕괴와 상호 존중의 상실, 인간의 오만을 다룬 작품으로 해석했다.

놀란 감독은 인터뷰에서 "'오펜하이머'는 기본적으로 세계의 종말, 문명의 붕괴나 종말에 관한 영화"라며 "그 감각을 '오디세이' 각색에도 가져왔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호메로스가 번영하던 고대 그리스 문명을 노래했다면 자신의 영화는 쇠퇴하는 현대 문명의 불안을 반영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인터뷰어는 영화감독을 현대의 음유시인에 비유하며 놀란 감독을 "황혼에 접어든 문명을 위한 음유시인"이라고 표현했다.

놀란 감독은 호메로스가 트로이 전쟁으로 추정되는 사건에서 약 400년이 흐른 뒤 서사시를 전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호메로스 시대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번성하는 문명에 살고 있었지만, 동시에 수백년 전 사라진 문명을 자신들보다 발전한 세계로 바라봤다는 것이다.

그는 당시 그리스인들이 무너진 거대한 궁전 성벽을 보고 인간이 아닌 거인이 만든 것이라고 여겨 '키클롭스의 벽'이라고 불렀다는 사례를 들었다. 과거 문명의 위대함과 그 문명이 돌연 붕괴했다는 기억이 '오디세이'의 배경에 깔려 있다는 설명이다.

놀란 감독은 "문명이 황혼을 맞는 순간과 같은 순환의 개념이 시 속에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며 트로이 전쟁 이후 호메로스 시대 사이에 벌어진 청동기 시대의 붕괴에 관심을 가졌다고 말했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는 트로이 전쟁을 마친 오디세우스가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기까지 약 10년에 걸쳐 겪는 표류와 모험을 그린 서사시다. 놀란 감독은 원전의 귀환 서사에 청동기 시대 문명 붕괴와 현대사회의 불안을 포개며 작품의 중심을 개인의 모험에서 문명의 존립 조건으로 확장했다.

"문명은 타인을 대하는 규칙으로 정의된다"

놀란 감독이 영화의 핵심으로 제시한 개념은 고대 그리스어 '제니아'(Xenia)다. 낯선 손님을 보호하고 환대해야 한다는 규범으로, 영화에서는 편의상 '제우스의 법'으로 표현됐다.

그는 제니아를 "내가 대우받고 싶은 방식으로 상대를 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낯선 사람이 변장한 신일 수도 있다는 고대 그리스의 신학적 믿음이 환대의 규범을 뒷받침했다는 것이다.

'오디세이'에서 오디세우스의 궁전을 차지한 구혼자들은 주인의 재산을 소진하고 페넬로페에게 결혼을 요구한다. 놀란 감독은 이들의 행동을 제니아와 제우스의 법을 침해한 것으로 해석했다.

그는 청동기 시대 문명 붕괴를 촉발한 세력으로 거론되는 '바다 민족'(Sea Peoples)의 미스터리도 제니아의 붕괴와 연결했다. 외부에서 바다를 건너온 이들이 누구였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환대와 상호 존중의 질서가 깨지는 순간 갈등과 전쟁, 문명 붕괴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놀란 감독은 제니아의 종교적 배경을 걷어내면 현대사회에서 말하는 '황금률'과 다르지 않다고 봤다. 타인을 자신이 대우받기를 원하는 방식으로 대하라는 원칙 자체는 시대가 변해도 유지됐다는 설명이다.

그는 "문명은 이 규칙에 달려 있고, 어쩌면 그것에 의해 정의된다"며 "우리는 지금 상호 존중이라는 개념이 그 어느 때보다 도전받는 세계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오디세이'를 기독교화한 것은 아니다"

영화에서 오디세우스의 속죄가 강조된 것이 원전을 기독교적 관점으로 바꾼 것 아니냐는 질문도 나왔다. 속죄는 고대 그리스 신화보다 기독교적 세계관에 가까운 개념이라는 지적이다.

놀란 감독은 의도적으로 '오디세이'를 기독교화한 것은 아니라고 답했다. 자신이 철학적 체계를 먼저 세워 놓고 각색한 것이 아니라 제니아가 무너졌을 때 벌어지는 일을 파고드는 과정에서 속죄로 읽힐 만한 장면들이 나왔다는 것이다.

그는 영화 속에 실제로 속죄가 존재하는지, 아니면 현대 관객이 오디세우스와 페넬로페의 마지막 만남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이를 속죄로 해석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오디세우스의 고백과 정직함, 페넬로페와의 친밀한 재회는 정서적인 해소를 제공한다. 그러나 오디세우스가 자신의 오만을 뉘우치더라도 이미 발생한 피해와 무너진 사회질서를 되돌릴 수는 없다.

"위대함에 사과하지 않으면 관객이 거부한다"

인터뷰에서는 오디세우스가 자신의 위대함과 오만을 반성해야 하는지를 두고도 질문이 이어졌다. 호메로스가 영웅의 위대함을 찬양했다면 현대사회는 위대한 인물을 특권의 상징으로 보고 사과와 자기비판을 요구한다는 문제의식이다.

놀란 감독은 현대의 관객에게 영웅적 인물을 제시하려면 위대함에 대한 성찰이 불가피하다고 답했다.

그는 "그 위대함에 대해 사과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그렇다'이다. 그렇지 않으면 관객이 위대함을 거부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관객의 공감을 얻기 위해 인물을 변화시키거나 결함과 반성을 부여하는 장치가 눈에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그 장치를 진부하거나 무효라고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놀란 감독은 이야기란 창작자가 밀어내는 에너지와 관객이 가져오는 기대가 만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관객은 영웅의 위대함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이 사는 시대의 평등과 책임, 자기비판의 관점에서 인물을 바라본다.

따라서 영화감독은 원전의 주제에 충실하면서도 현대 관객이 몰입하고 만족할 수 있는 인물을 만들어야 한다. 놀란 감독은 '오디세이'에서 이를 가능하게 하는 철학적 기반으로 제니아의 붕괴를 택했다.

"'메멘토'도 뼈대는 전통적인 3막 구조"

놀란 감독은 고전을 새롭게 각색하는 작업을 전통을 전부 버리는 일이 아니라 전통의 작동 방식을 이해한 뒤 일부를 변형하는 일로 규정했다.

그는 지난 100년간 할리우드가 전 세계 관객이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의 공통언어를 만들어 왔다고 평가했다. 영화의 장르와 인물, 갈등, 서사의 방향성에 일정한 규칙과 관습이 형성됐다는 것이다.

놀란 감독은 "관습을 깨거나 휘고 옮길 수는 있지만 그 관습을 계속 의식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정 장치가 관객에게 지나치게 익숙해져 클리셰가 됐다면 바꿔야 하지만, 아무런 기반 없이 완전한 백지상태에서 이야기를 만들 수는 없다는 설명이다.

그는 자신의 초기작 '메멘토'를 사례로 들었다. '메멘토'는 시간을 역순으로 배열했지만 관객이 받아들이는 이야기의 뼈대는 매우 명확하고 전통적인 3막 구조였다는 것이다.

놀란 감독은 "표면에 있는 것을 바꾸려면 그 아래에 있는 것은 매우 익숙해야 한다"며 전통적인 서사구조가 있었기 때문에 비전통적인 시간 구성이 작동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배트맨부터 오디세우스까지…"모든 영화는 전통과 비교된다"

놀란 감독은 '오디세이'처럼 수천년간 해석돼 온 작품을 각색하는 일이 완전히 새로운 인물을 창조하는 것보다 특별히 어렵다는 주장에도 선을 그었다.

새로운 이야기 역시 기존 장르와 영화의 관습 속에서 평가되기 때문이다. '메멘토'는 독창적인 인물과 구조를 갖췄지만 느와르와 기억상실 서사의 전통에 따라 평가됐고, 배트맨 영화는 앞선 만화와 영화 속 배트맨의 이미지와 비교됐다.

'오디세이' 역시 호메로스의 원전과 수천년간 축적된 해석, 고전학자들의 시선을 피할 수 없다. 놀란 감독은 이를 불만의 대상으로 보지는 않았다. 원작과 장르, 관습은 창작을 제한하면서 동시에 관객과 이야기를 연결하는 공통 기반이 된다는 설명이다.

그는 영화감독이라면 관객이 "왜 이 인물을 이런 방식으로 사용했는가", "왜 이 인물이 이런 행동을 하는가"라고 물을 것이라는 사실을 항상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들은 실재한다…그러나 인간의 투사"

놀란 감독은 영화에서 신들을 단순한 상상이나 상징으로 처리하지 않았다. 오디세우스가 살았던 세계의 사람들에게 신은 믿을지 말지를 선택하는 대상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현실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과학이 발달하기 전에는 천둥과 번개, 바다의 변화와 폭풍 등 자연현상 자체가 신들의 존재를 보여주는 증거로 받아들여졌다고 설명했다. 천둥은 신이 인간에게 보내는 말이었고, 바다의 상태는 신들의 움직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었다.

현대인이 지구가 둥글고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사실을 과학적 현실로 받아들이듯, 고대인은 자연을 설명하는 신학적 구조를 현실로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놀란 감독은 "나에게 신들은 실제한다. 하지만 그 신들은 사람들 안에 있다"며 "신들은 사람들이 투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들이 인간 밖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초월적 실체인 동시에 인간의 욕망과 공포, 능력을 투영한 존재라는 해석이다. 인터뷰어가 이를 현대인의 슈퍼히어로에 비유하자 놀란 감독도 "어떤 면에서는 그렇다"고 답했다.

놀란 감독의 '오디세이'는 오디세우스라는 위대한 영웅의 귀환을 따라가면서도 그가 돌아올 세계가 이미 회복할 수 없을 만큼 훼손됐는지를 묻는다. 속죄가 개인을 구원할 수는 있어도 무너진 문명을 되돌릴 수 있는지, 상호 존중이 사라진 사회가 여전히 문명이라 불릴 수 있는지가 영화의 핵심 질문으로 제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