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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 진돗개의 사냥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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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375회 · 좋아요 5 · 2026-09-25 📊 채널 정보 보기 ▶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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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 진돗개의 사냥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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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돗개의 사냥 역사]


우리 민족이 어느 시기부터 개와 함께 사냥을 하였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많은 고서화의 수렵도를 보면 사냥터에 개가 등장하며 고구려 시대의 동굴 벽화에도 수렵하는 사냥터에 개가 있는 기록들이 남아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로 미루어 우리 선조들은 개를 사냥에 이용한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선조들이 개를 사냥에 이용했다는 기록은 일본의 역사 기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인덕 천왕 46년 (5세기) 백제의 사신이 사냥개와 매를 선물로 가져왔다고 적고 있다. 우리 선조들은 그 이전부터 개를 사냥에 이용했던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옛날에는 의복이 발달하지 못한 관계로 겨울이면 따뜻하게 몸을 보호할 수 있는 짐승가죽이 필요했다. 그 모피를 구하기 위하여 사람들은 사냥을 했고, 그곳에 진돗개가 동원되었다. 모피 값은 근대에서도 상당하였다. 1930년도 만해도 산짐승 모피 한 장 값이 2전을 하였으니 만만한 가격이 아니었다. 또한 짐승을 잘 잡는 진돗개 값은 그 당시 귀한 황소 한 마리 값을 기준으로 거래가 이루어졌으니 전문 사냥꾼들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1950년 읍 기점으로 진도에서는 넉 사냥의 전환기라 볼 수 있다. 지나친 산림 토벌로 인하여 온 산은 벌거숭이로 황폐화 되었다. 짐승들은 서식할 숲을 잃고 그 숫자는 현저히 줄어들어 진도에서 그 모습을 영원히 감추어버린 짐승도 생겼다. 그래서 모피 값도 점차 저하하여 차츰 진돗개의 넉 사냥은 그 빛을 잃어갔다.

1970년 후반을 기점으로 진도에 또 다시 넉 사냥이 활발해졌다. 그동안 산림녹화에 힘을 쏟아 짐승들이 늘어난 것이다. 하지만 진도에는 넉 사냥을 할 수 있는 짐승은 노루뿐이었다. 다른 짐승은 이미 진도에서 멸종을 하였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