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창경궁 탐방-여행과음식문화#49-서울의궁-서울하루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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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창경궁 탐방-여행과음식문화#49-서울의궁-서울하루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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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음식#49-창덕궁,창경궁 탐방 - 서울하루여행
안녕하세요 위대한 요리장의생애와, 맛있는 맛이야기, 요리사~랑연구소 김광오 티비 김광오교수입니다. 이번시간에는 여행과음식문화 그 마흔아홉번째로 서울여행의 필수코수, 서울 하루여행의 대명사, 서울에 5대 궁궐 중 나란히 붙어있는 형제 궁궐, 창덕궁과 창경궁 답사를 해보겠습니다.
창덕궁 창경궁의 개요
창덕궁과 창경궁은 경복궁의 동쪽에 나란히 붙어 하나의 권역을 이루며, 조선 왕실의 주된 거처와 생활 공간 역할을 한 형제 궁궐입니다. 그럼 양 궁궐들의 특징을 알아봐야 겠는데요~ 먼저 창덕궁은 서울의 자연 지형에 맞춰 지은 가장 오랜 기간 왕이 살았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궁궐이고 창경궁은 부족한 왕실 생활 공간을 넓히려고 창덕궁에 이어 지은 아담하고 친숙한 궁궐입니다,
창덕궁 가는길
저는 오늘 2026년 하계방학을 맞이하여 친구 광철이와 서울의 대표 궁궐을 답사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 첫 번째 실행으로 오늘 창덕궁을 탐방하기로 하였는데요~ 저 처럼 지하철로 창덕궁을 방문할 때, 가장 빠르고 편리한 역은 3호선 안국역이며, 이외에도 1·3·5호선이 지나는 종로3가역을 통해서도 도보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저는 편안한 마음으로 작은 손가방 하나만을 들고 3호선 3번출구에서 약속한 친구와 접선을 하였는데요~
이곳 3호선 3번 출구로 나와서 현대건설 사옥을 왼편에 두고 약 300m 정도 앞으로 쭉 직진하면 길 끝 삼거리에 이르고 왼편에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과 매표소가 보입니다
저는 나이가 먹어가면서 그전에는 관심이 적었던 꽃과 식물, 그리고 나무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높아지고 있었습니다. 한평생 치열하게 앞만 바라보고 달려왔던 제 인생에 있어서 밥벌이와 상관이 없는 다른 내용과 지식들은 사치였나봅니다.. 하지만 광철이는 눈에 보이는 각종 나무와 꽃에 대하여 박식한 지식을 갖고 있었는데요~ 친구는 군생활을 36년간 성실하게 마치고 원사로 전역한 국가유공자였는데 내가 전혀 모르는 조경분야에 자격증도 취득하였으며 현재도 연금을 380만원이나 받고 있다는데 내심 친구가 다르게 보였으며 부러웠습니다. 우리는 안국역에서 돈화문 매표소 까지 가는 300여미터의 짧은 거리동안 그동안 못다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다보니 어느세 매표소에 도착하였습니다.
이처럼 친구 광철이의 일반상식은 저보다 훨신 높았습니다. 고등학교때 배운 역사적 사실들이 순간적으로 막히는 저는 얼굴이 뜨거웠는데요~ 그럼여기서 창덕궁의 개요에 대하여 정확히 짚고 넘어가야 겠습니다.
창덕궁의 개요
창덕궁은 조선 시대 태종이 경복궁의 이궁으로 지었으나 역사 속에서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왕들이 실제로 거주하며 나라를 다스렸던 실질적인 법궁입니다. 이 궁은 인위적인 격식과 완벽한 대칭 구조를 따르는 다른 궁궐들과 달리 주변의 산세와 지형지세를 손상시키지 않고 조화롭게 건물을 배치한 것이 그 특징입니다. 창덕궁은 자연에 순응하며 지어진 배치 덕분에 가장 한국적인 궁궐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그 독창성과 조경미를 인정받아 서울의 궁궐 중 유일하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특히 궁궐 뒤편에 자리 잡은 드넓은 후원은 정자와 연못, 수백 년 된 나무들이 어우러져 한국 전통 정원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오늘날에도 계절마다 아름다운 자연과 건축이 이루는 조화를 보기 위해 많은 사람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장마가 끝나가는 무렵에 중년남자 두명이 함께하고 있는 조선의 고궁여행은 정말 쉬지않고 감탄을 연발하게 할 정도로 감동적이었습니다.
아무기대 없이 친구와 처음으로 창덕궁 후원에 발을 디딘 순간, 도심 속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깊은 고요함이 우리를 감싸 안았는데요~ 억지로 꾸미지 않고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살린 조선 정원의 풍경은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울창한 숲길을 걸으며 부서지는 햇살과 연못에 비친 고즈넉한 정자를 바라보는데, 저의 마음 깊은 곳까지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옛날 왕들이 왜 이 비밀스러운 정원을 그토록 사랑했는지 비로소 온몸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제가 오늘 이곳에서 채운 평화로운 기억은 오래도록 가슴속에 따뜻하게 남아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감동적인 창덕궁 후원 관람을 마치고 나면 저희는 정문으로 다시 나갈 필요 없이, 궁궐 내부 연결 통로를 통해 창경궁으로 바로 갈수가 있다고 합니다.
창경궁의 정의
저희는 창덕궁에 이어 바로 붙어있는 두 번째 형제궁 창경궁으로 들어왔습니다. 창경궁은 조선 시대 성종이 왕실의 어른인 세 분의 대왕대비와 대비를 편안하게 모시기 위해 기존의 수강궁을 확장하여 지은 궁궐입니다. 이궁은 임금을 위한 정치 공간이기보다는 왕실 가족의 편리한 주거와 생활을 위해 지어졌기 때문에 구조가 비교적 아담하고 여성적인 아늑함이 느껴지는 것이 그 특징이라는데요~ 창경궁은 남쪽을 바라보는 일반적인 조선의 궁궐들과 달리 주변 지형에 맞추어 정문과 정전이 동쪽을 향하고 있는 유일한 동향 궁궐이기도 합니다. 일제 강점기에는 전각들이 헐리고 동물원과 식물원이 들어서며 창경원으로 격하되는 아픈 역사를 겪었지만, 이후 끊임없는 복원 노력을 통해 오늘날 옛 궁궐의 당당한 모습을 다시 찾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최초의 서양식 온실인 대온실과 아름다운 연못인 춘당지가 있어 역사적 의미와 함께 편안한 휴식처를 제공하는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창경궁 팔각 칠층석탑
창경궁 춘당지 옆에 서 있는 창경궁 팔각 칠층석탑은 우리나라 전통 탑이 아니라 조선 성종 1년(1470년) 중국 명나라 때 만들어진 이국적인 석탑입니다.일반적인 한국 석탑은 네모난 사각형 모양이 많지만, 이 탑은 아래부터 위까지 전체가 팔각형이며 아래층 몸돌이 장독처럼 볼록한 티베트·몽골풍(라마교)의 중국식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인 1911년, 일제가 창경궁을 동물원과 박물관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상인에게서 이 탑을 사들여 궁궐 안에 세우게 되었습니다. 비록 아픈 역사를 거쳐 들어왔지만, 국내에서 보기 드문 독특한 중국식 석탑 양식과 화려한 조각 예술품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현재 대한민국의 보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습니다.
창경궁 대온실
창경궁 대온실은 1909년에 완공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식물원입니다. 흰색의 날렵한 철골 구조와 투명한 유리가 어우러진 이국적인 외관이 특징이며, 온실 앞마당에는 서양식 분수대와 정원이 아름답게 조성되어 있습니다.겉보기에는 아름답지만 내부에는 아픈 역사가 숨어 있습니다. 일제가 순종 황제를 위로한다는 구실로 창경궁의 전각들을 허물고 동물원과 함께 지은 건물이 부서져 내린 궁궐의 권위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해방 이후 창경궁 복원 작업을 거치면서 지금은 격이 높은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과거에는 열대 식물들이 가득했으나 지금은 우리 땅에서 자라는 천연기념물, 야생화, 동백나무 등 자생 식물들이 따뜻한 유리창 안에서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창경궁 입장권만 있으면 별도의 비용 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들어가 고즈넉한 궁궐 속 색다른 풍경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창경궁 백송
창경궁 백송은 춘당지 남쪽에 자리한 세 그루의 희귀한 소나무로, 자라면서 껍질이 벗겨져 줄기가 하얗게 변하는 신비로운 특징을 가졌습니다. 본래 고향은 중국 베이징으로, 조선시대 사신들이 귀하게 들여온 나무입니다. 성장 속도가 느리고 번식이 까다로워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귀한 대접을 받았습니다.전국의 다른 고목 백송들과 달리 창경궁의 백송들은 일제강점기 초기에 심어져 이제 막 100년을 넘긴 젊은 나무들입니다. 덕분에 세월의 짓눌림 없이 하늘을 향해 곧고 위풍당당하게 뻗은 강인한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주변의 푸른 숲과 연못 사이에서 홀로 은빛으로 빛나는 이국적인 자태는 창경궁 산책길의 색다른 관람 포인트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구독과 좋아요는 영상제작에 큰 힘이됩니다. 이상으로 요리사~랑연구소 김광오티비 김광오였습니다.
안녕하세요 위대한 요리장의생애와, 맛있는 맛이야기, 요리사~랑연구소 김광오 티비 김광오교수입니다. 이번시간에는 여행과음식문화 그 마흔아홉번째로 서울여행의 필수코수, 서울 하루여행의 대명사, 서울에 5대 궁궐 중 나란히 붙어있는 형제 궁궐, 창덕궁과 창경궁 답사를 해보겠습니다.
창덕궁 창경궁의 개요
창덕궁과 창경궁은 경복궁의 동쪽에 나란히 붙어 하나의 권역을 이루며, 조선 왕실의 주된 거처와 생활 공간 역할을 한 형제 궁궐입니다. 그럼 양 궁궐들의 특징을 알아봐야 겠는데요~ 먼저 창덕궁은 서울의 자연 지형에 맞춰 지은 가장 오랜 기간 왕이 살았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궁궐이고 창경궁은 부족한 왕실 생활 공간을 넓히려고 창덕궁에 이어 지은 아담하고 친숙한 궁궐입니다,
창덕궁 가는길
저는 오늘 2026년 하계방학을 맞이하여 친구 광철이와 서울의 대표 궁궐을 답사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 첫 번째 실행으로 오늘 창덕궁을 탐방하기로 하였는데요~ 저 처럼 지하철로 창덕궁을 방문할 때, 가장 빠르고 편리한 역은 3호선 안국역이며, 이외에도 1·3·5호선이 지나는 종로3가역을 통해서도 도보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저는 편안한 마음으로 작은 손가방 하나만을 들고 3호선 3번출구에서 약속한 친구와 접선을 하였는데요~
이곳 3호선 3번 출구로 나와서 현대건설 사옥을 왼편에 두고 약 300m 정도 앞으로 쭉 직진하면 길 끝 삼거리에 이르고 왼편에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과 매표소가 보입니다
저는 나이가 먹어가면서 그전에는 관심이 적었던 꽃과 식물, 그리고 나무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높아지고 있었습니다. 한평생 치열하게 앞만 바라보고 달려왔던 제 인생에 있어서 밥벌이와 상관이 없는 다른 내용과 지식들은 사치였나봅니다.. 하지만 광철이는 눈에 보이는 각종 나무와 꽃에 대하여 박식한 지식을 갖고 있었는데요~ 친구는 군생활을 36년간 성실하게 마치고 원사로 전역한 국가유공자였는데 내가 전혀 모르는 조경분야에 자격증도 취득하였으며 현재도 연금을 380만원이나 받고 있다는데 내심 친구가 다르게 보였으며 부러웠습니다. 우리는 안국역에서 돈화문 매표소 까지 가는 300여미터의 짧은 거리동안 그동안 못다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다보니 어느세 매표소에 도착하였습니다.
이처럼 친구 광철이의 일반상식은 저보다 훨신 높았습니다. 고등학교때 배운 역사적 사실들이 순간적으로 막히는 저는 얼굴이 뜨거웠는데요~ 그럼여기서 창덕궁의 개요에 대하여 정확히 짚고 넘어가야 겠습니다.
창덕궁의 개요
창덕궁은 조선 시대 태종이 경복궁의 이궁으로 지었으나 역사 속에서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왕들이 실제로 거주하며 나라를 다스렸던 실질적인 법궁입니다. 이 궁은 인위적인 격식과 완벽한 대칭 구조를 따르는 다른 궁궐들과 달리 주변의 산세와 지형지세를 손상시키지 않고 조화롭게 건물을 배치한 것이 그 특징입니다. 창덕궁은 자연에 순응하며 지어진 배치 덕분에 가장 한국적인 궁궐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그 독창성과 조경미를 인정받아 서울의 궁궐 중 유일하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특히 궁궐 뒤편에 자리 잡은 드넓은 후원은 정자와 연못, 수백 년 된 나무들이 어우러져 한국 전통 정원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오늘날에도 계절마다 아름다운 자연과 건축이 이루는 조화를 보기 위해 많은 사람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장마가 끝나가는 무렵에 중년남자 두명이 함께하고 있는 조선의 고궁여행은 정말 쉬지않고 감탄을 연발하게 할 정도로 감동적이었습니다.
아무기대 없이 친구와 처음으로 창덕궁 후원에 발을 디딘 순간, 도심 속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깊은 고요함이 우리를 감싸 안았는데요~ 억지로 꾸미지 않고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살린 조선 정원의 풍경은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울창한 숲길을 걸으며 부서지는 햇살과 연못에 비친 고즈넉한 정자를 바라보는데, 저의 마음 깊은 곳까지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옛날 왕들이 왜 이 비밀스러운 정원을 그토록 사랑했는지 비로소 온몸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제가 오늘 이곳에서 채운 평화로운 기억은 오래도록 가슴속에 따뜻하게 남아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감동적인 창덕궁 후원 관람을 마치고 나면 저희는 정문으로 다시 나갈 필요 없이, 궁궐 내부 연결 통로를 통해 창경궁으로 바로 갈수가 있다고 합니다.
창경궁의 정의
저희는 창덕궁에 이어 바로 붙어있는 두 번째 형제궁 창경궁으로 들어왔습니다. 창경궁은 조선 시대 성종이 왕실의 어른인 세 분의 대왕대비와 대비를 편안하게 모시기 위해 기존의 수강궁을 확장하여 지은 궁궐입니다. 이궁은 임금을 위한 정치 공간이기보다는 왕실 가족의 편리한 주거와 생활을 위해 지어졌기 때문에 구조가 비교적 아담하고 여성적인 아늑함이 느껴지는 것이 그 특징이라는데요~ 창경궁은 남쪽을 바라보는 일반적인 조선의 궁궐들과 달리 주변 지형에 맞추어 정문과 정전이 동쪽을 향하고 있는 유일한 동향 궁궐이기도 합니다. 일제 강점기에는 전각들이 헐리고 동물원과 식물원이 들어서며 창경원으로 격하되는 아픈 역사를 겪었지만, 이후 끊임없는 복원 노력을 통해 오늘날 옛 궁궐의 당당한 모습을 다시 찾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최초의 서양식 온실인 대온실과 아름다운 연못인 춘당지가 있어 역사적 의미와 함께 편안한 휴식처를 제공하는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창경궁 팔각 칠층석탑
창경궁 춘당지 옆에 서 있는 창경궁 팔각 칠층석탑은 우리나라 전통 탑이 아니라 조선 성종 1년(1470년) 중국 명나라 때 만들어진 이국적인 석탑입니다.일반적인 한국 석탑은 네모난 사각형 모양이 많지만, 이 탑은 아래부터 위까지 전체가 팔각형이며 아래층 몸돌이 장독처럼 볼록한 티베트·몽골풍(라마교)의 중국식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인 1911년, 일제가 창경궁을 동물원과 박물관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상인에게서 이 탑을 사들여 궁궐 안에 세우게 되었습니다. 비록 아픈 역사를 거쳐 들어왔지만, 국내에서 보기 드문 독특한 중국식 석탑 양식과 화려한 조각 예술품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현재 대한민국의 보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습니다.
창경궁 대온실
창경궁 대온실은 1909년에 완공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식물원입니다. 흰색의 날렵한 철골 구조와 투명한 유리가 어우러진 이국적인 외관이 특징이며, 온실 앞마당에는 서양식 분수대와 정원이 아름답게 조성되어 있습니다.겉보기에는 아름답지만 내부에는 아픈 역사가 숨어 있습니다. 일제가 순종 황제를 위로한다는 구실로 창경궁의 전각들을 허물고 동물원과 함께 지은 건물이 부서져 내린 궁궐의 권위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해방 이후 창경궁 복원 작업을 거치면서 지금은 격이 높은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과거에는 열대 식물들이 가득했으나 지금은 우리 땅에서 자라는 천연기념물, 야생화, 동백나무 등 자생 식물들이 따뜻한 유리창 안에서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창경궁 입장권만 있으면 별도의 비용 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들어가 고즈넉한 궁궐 속 색다른 풍경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창경궁 백송
창경궁 백송은 춘당지 남쪽에 자리한 세 그루의 희귀한 소나무로, 자라면서 껍질이 벗겨져 줄기가 하얗게 변하는 신비로운 특징을 가졌습니다. 본래 고향은 중국 베이징으로, 조선시대 사신들이 귀하게 들여온 나무입니다. 성장 속도가 느리고 번식이 까다로워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귀한 대접을 받았습니다.전국의 다른 고목 백송들과 달리 창경궁의 백송들은 일제강점기 초기에 심어져 이제 막 100년을 넘긴 젊은 나무들입니다. 덕분에 세월의 짓눌림 없이 하늘을 향해 곧고 위풍당당하게 뻗은 강인한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주변의 푸른 숲과 연못 사이에서 홀로 은빛으로 빛나는 이국적인 자태는 창경궁 산책길의 색다른 관람 포인트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구독과 좋아요는 영상제작에 큰 힘이됩니다. 이상으로 요리사~랑연구소 김광오티비 김광오였습니다.